죽창으로 지키려는 독도
7~8년 전 성지순례의 마지막 코스로 로마의 시스티나경당을 찾았다. 이전에도 몇 차례 들렀었지만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를 다시 본다는 설렘으로 비싼 입장권을 사들었다. 그런데 지금 한창 수리 중이라 제한 된 몇 군데만 볼 수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여기저기 가림 막이 쳐있고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안내원의 말로는 너무 오랫동안 개방되어 있어서 먼지가 끼는 등 벽화의 상태가 좋지 않아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벌이는데 일본의 유명회사(소니사인 것으로 기억됨)가 몇 백만 달러를 출연했다고 한다. 처음엔 ‘일본의 회사’라더니 얘기가 거듭되면서 어느새 ‘일본이 비용을 지원한 역사적인 작업’이라고 바꾸어 설명했다.
닭살이 돋았다. 일본의 그 치밀한 계산에 혀가 내둘러졌다. 일본은 그랬다. 오래 전부터 세계 곳곳에 교두보를 쌓아가고 있었다. 유럽은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까지 발 닿는 곳이면 어디든 흔적을 남기고 말뚝을 박고 일장기를 꼽았다.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언젠가는 점령하겠다는 원모에서다. 미국의 하와이에서는 원주민보다 월등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고 페루에서는 일본식 이름을 가진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 브라질에 축구 조기유학을 보내더니 FIFA랭킹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한국보다 훨씬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독도 탐심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벌써 100년 전부터 주도면밀한 계산아래 작전을 펴고 뜸을 들여왔다. 이제 100년 쯤 되어서 뜸이 잘 들었다 싶으니까 교과서에 저희 땅이라고 당당히 올리겠다는 태도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지리관계 기관은 이미 일본의 은밀한 수작에 녹아난 상태이니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배짱인 것이다.
한국의 반발? 그것은 외면해도 되고 무시해도 된다. 기껏해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불사르거나 몇몇은 삭발단식 농성에 들어가거나 며칠쯤 신문에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대서특필하다가 잊어버리는 것이 고작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사실이 그랬다. 국민들은 촛불집회 하느라 밤잠 설치고, 여당과 야당은 밥그릇 챙기기 싸움에 여념이 없고, 전직 대통령은 후임 대통령과 티격태격하고, 신문과 방송은 편 갈라 싸움질하는 사이 ‘독도가 아닌 다케시마’라고 부아를 긁어댄 것이다. 삼천리강산이 온통 분기로 탱천했다. 소갈머리 없는 거대여당은 대뜸 ‘독도에 해병대를 주둔시키라’고 흥분하고, 정부는 ‘즉각 독도 관련 TFT를 구성한다.’고 흰소리하고, 대통령선거에 두 번이나 출마했다 떨어진 어느 야당 대표는 “독도 수호대를 파견한다면 자원해서 독도를 끝까지 지키겠다.‘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주일 쯤이 지나서 이번에는 미국지리원이 독도를 ‘주인 없는 땅’이라고 표기했다하여 또 한바탕 난리를 치면서 여당과 야당, 언론들이 합세하여 주미대사를 이미 죽은 목숨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부시대통령의 특단의 조치로 원상회복되었다고 또 한번 난리다. ‘한국에 대한 배려’ ‘한미동맹의 굳건함 반영’ ‘방한을 앞둔 부시의 선물’ 등 듣기에도 민망한 말씀들을 쏟아낸다. 심지어 여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전화위복”이라며 희색이 만면했다.
일본은 이러한 과정을 실눈으로 지켜보면서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게 뻔하다. 자기들이 1백 년 동안 준비해온 작업을 단 며칠 사이에 결판내겠다고 덤벼든 꼴이 꼭 하룻밤 부나비의 행태와 너무 닮아서이다. 60여 년 전의 자기네 모습과도 잘 닮아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 이미 전세는 기울었는데 오기로 끝까지 버텨보겠다며 죽창(대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아 만든 창)으로 밀려오는 미군을 막아내려던 일본군 앞에 섬광이 번뜩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원자폭탄이 터진 것이다. 한 순간에 눈앞의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원자탄의 위력을 모른 채 죽창연습을 열심히 하던 자신들의 모습을 지금 세계 지리학계의 거대한 공격 앞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한국의 싸움꾼들에게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싸움들 그만 하고 정신 차려야 한다. 그러지 못할 바엔 차라리 조용히 뒷자리로 물러들 나야 한다. 말을 냈으면 아들의 병역기피 몫까지 대신해서 어서 독도로 가 수호를 하든지, 헌법을 고치고도 남을 숫자의 힘으로 해병대독도주둔을 의결하든지, 이번에 방한하는 부시대통령에게 일본 좀 혼내주라고 부탁하든지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가상 시나리오 : 일본이라는 도둑놈이 야밤에 몰래 들어와 독도라는 가보를 훔쳐 달아났다. 도둑놈은 그 가보를 미국 상인에게 몰래 팔았다. 가보를 잃은 한국은 혼비백산하여, 이곳저곳을 수소문한 끝에 미국상인의 집에서 장물을 발견한 다음 윽박질러서 되돌려 받았다. 한국은 일단 안도의 숨을 쉬었다.
너무도 단순한 시나리오다. 그런데 여야가 미국의 조치에 대해 감사하다며 특별논평을 하고도 모자라 이것을 ‘전화위복’이라고 내세우니 한심할 따름이다. 잃어버린 장물을 되돌려 받은 것은 원상회복이므로 감사한 일일 수 있으나 앞으로 다시 도둑맞지 않는다는 보장도 아닌데 무슨 전화위복인지 미련한 국민은 알 수가 없다.